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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으면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한국 재벌가 인물 - 현대그룹 정주영 가계도

by yesssi1990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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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세대 기업인

정주영

이병철 삼성그룹 초대 회장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입니다.

생전에는 삼성그룹 이병철을 제치고 대한민국 최고 부자였던 점을 통해서 왕회장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합니다. 

현대그룹이 괴물같이 성장을 하던 1970년대 전성기 시절에는 현재의 유명한 중견기업에서

현대가 수주받은 건설 사업을 정주영에게 하청 받으러 다녔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정주영은 많은 자식들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유명한 이유가 자식들이 모두 어머니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본처인 변중석이 낳은 자식은 단 두 명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식 부인인 변중석이 낳은 딸 외에, 첩들이 낳은 딸들은 호적에도 올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첩이 낳은 아들은 올려주었지만 말이죠. 엄청난 여성편력으로도 유명한 그의 가계도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목차>

1. 장남. 정몽필 1934-1982

2. 차남. 정몽구 1938-

3. 삼남. 정몽근 1942-

4. 장녀. 정경희 1944-

5. 사남. 정몽우 1945-1990

6. 오남. 정몽헌 1948-2003

7. 육남. 정몽준 1951-

8. 칠남. 정몽윤 1955-

9. 팔남. 정몽일 1959-

 

 

 

1. 장남 정몽필 1934-1982

정주영 장남

1934년 12월 11일 강원도 통천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주영의 장남입니다. 정몽필의 생모는 정주영의 첫사랑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몰락한 양반가문이었던 정주영의 집안은

정주영의 아내로서 비슷한 계층의 집안의 여자와 결혼을 시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에 정몽필의 생모는 통천을 떠나게 되었으며, 정주영과 헤어졌다고 합니다.

이미 신분제가 사라진 시대였지만, 정몽필의 생모는 신분제라는 벽에 가로막혀서 사랑하는 남자와 아들을 두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었으면, 현대그룹을 물려받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시절 장남이라는 존재는 그만큼 강력했으며, 장남인 정몽필이 후계자로서

현대그룹을 물려받았다고 하면 왕자의 난도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1982년 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경부고속도로에서 차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가다가 트레일러와 추돌로 인하여

운전기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2. 차남 정몽구 1938-

정몽구

1938년 3월 19일 정주영와 변중석 사이에서는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복 형인 정몽필을 포함하게 된다고 하면 정주영의 입장에서는 차남으로 강원도 통천군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사람들은 정몽구가 장남으로 흔히들 알고 있습니다.

이유는 정몽필이 일찍 죽기도 하였고, 정주영의 정실부인인 변중석과 낳은 첫 자식은 정몽구이기 때문입니다.

 

정몽구는 성미가 급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현장에서 몸을 부딪히면서 일하는 것을 중시하던 다혈질 마초 기질이라서

학구파적 기질을 우선시했던 아버지 정주영이 정몽구를 못마땅해했다고 합니다. 

 

왕자의 난으로 현대자동차 그룹을 가지고 독립하게 됩니다.

 

3. 삼남 정몽근 1942-

1942년 4월 11일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정주영의 삼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현대그룹에서 유일한 유통업 계열사인 금강개발산업을 맡아서 현대백화점을 키웠습니다.

2000년~2006년까지 현대백화점그룹의 회장직을 맡았으며, 현재는 명예회장입니다.

현재 현대백화점그룹의 회장은 장남 정지선, 부회장은 차남 정교선이 맡고 있다고 합니다. 

 

4. 장녀 정경희 1944-

1944년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정주영의 외동딸로 태어나게 됩니다.

정주영의 호적에 오른 유일한 딸입니다.

 

다른 남자 형제들에 비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만,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선진종합 회장 정희영입니다.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가 정주영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주영은 일본에서 유학 중인 외동딸과 맺어주기 위해서

정희영을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 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5. 사남 정몽우 1945-1990

1945년 2월 24일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에서 정주영과 변중석의 사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정몽우는 고교 시절에 또래 친구들과 패싸움 중에 머리를 크게 다치고 난 후 잠깐 우울증을 앓았다고 합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는지 중앙대학교에 들어가고

연애결혼으로 숙명여대 퀸카 출신인 이행자와 결혼도 하게 됩니다.

 

큰아들 정일선이 4살이 되던 해인 1974년부터 후유증이 재발하여 이때부터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일을 못하게 되자 아버지인 정주영은 정몽우를 굉장히 못마땅해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1990년 4월 24일 남서울워싱턴호텔에서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정몽우가 사망하면서 큰 형인 정몽구가 사실상 아버지 역할을 하면서 남겨진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챙겼다고 합니다.

특히 정몽구는 정몽우의 장남인 정일선을 아꼈는데, 자신의 아들인 정의선과 동갑이고 둘 다 현대차 그룹에 입사하여

2003년에는 현대비앤지스틸 부사장, 2005년에는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을 맡은 것을 보면 얼마나 친자식처럼 아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몽우의 세 아들에게 현대비앤지스틸의 지분을 나누어줬다고 합니다. 

 

6. 오남 정몽헌 1948-2003

 

1948년 정주영의 오남으로 대한민국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습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합니다.

 

원래는 문학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주영의 뜻에 따라 경영을 공부했으며, 1975년 현정은과 결혼했습니다. 

 

2003년 불법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서 검찰의 조사를 받다가

그 해 8월 종로구 계동에 있는 현대그룹 사옥에서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한때는 그의 죽음에 여러 의문점들이 있어서 타살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국립과학수사원과 경찰의 조사 결과 자살로 공식적으로 밝혀졌습니다. 

 

7. 육남 정몽준 1951-

1951년 11월 15일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정주영의 육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변중석이 낳은 아들이 아닌, 정주영이 밖에서 낳아온 아들이라고 합니다.

 

국악인 안비취 씨가 정몽준의 생모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정몽준 본인이 그분은 나와 관계가 없다고 직접 말했습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해 학력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정주영은

아들인 정몽준이 서울대학교 상대에 들어가자 다른 재벌 총수들을 만나면 아들(정몽준)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이병철 회장도 부러워했다는 아들이 바로 정몽준입니다.  이병철의 자식들은 서울대학교를 한 명도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주영이 가장 총애를 한 아들이라고도 합니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빠른 나이인 31세에 사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현대그룹을 물려주려고 했지만, 정치에 뜻이 있었던 아들의 뜻에 따라서 정치자금 겸 현대중공업과 그 산하 계열사를 나누어줬다고 합니다.

 

8. 칠남 정몽윤 1955-

1955년 3월 19일 정주영의 칠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가서 샌프란시스코 주립 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대학원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이후에 현대해상화재보험을 물려받아서 현재까지 경영하고 있습니다.

 

일화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람이 정몽윤의 지갑을 주어서 전달해 줬는데, 자동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나와서 몇 십만 원의 사례금을 주었다고 인증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9. 팔남 정몽일 1959-

1959년 정주영의 팔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변중석 여사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정주영이 대선 출마 선언 이후 토론회에서 변중석의 소생이 아니라고 밝혀 생모가 따로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중앙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조지 워시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현대건설에 입사했습니다.

 

금융 계열사인 현대울산종합금융을 물려받았으나 IMF 시기에 동양종합금융에 합병되어 정리되었습니다.

현재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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