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이라는 존재들은 현제에도 드라마나 영화에 많이 쓰이고 있는 소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어렴풋이 화랑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주로, 꽃미남 10대 청소년들이라고만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화랑들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른 모습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화랑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목차>
1. 화랑의 개요
화랑은 고대 신라에 있던 청년, 청소년으로 이루어진 군대입니다. 현대로 치면 청소년 학군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 목적인 심신 수련이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창설 초창기부터의 목적은 관리, 군인 양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에 알고 있는 화랑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이미지는 잘생긴 청년들로 이루어진 단체의 이미지가 생긴 이유는 화랑은 내면의 수련도 중요하지만 외면을 가꾸는 것 또한 중요하게 보았다고 합니다. 단순한 수련 단체를 넘어 현대로 치면 나라를 대표하는 홍보대사에 가까운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2. 화랑의 시작
화랑의 시작은 진흥왕 때입니다. 기원은 신라에서 외모가 아름다운 여자 둘을 뽑아서 그들을 중심으로 인재를 모으는 원화 제도였습니다. 두 원화 남모와 준정간의 시기심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원화 제도는 폐지되었으며, 이후에 같은 역할이지만 여자 대신에 곱상한 소년과 청년들을 모집해서 화랑이라고 부르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서는 화랑제도를 만들었다고 하는 576년 이전에도 사다함 같은 화랑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전부터 신라에는 비슷한 개념의 청소년 조직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576년도에 정식적으로 화랑제도를 정립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진흥황 시대에 신라의 영토가 고구려/백제/가야와의 전쟁 승리를 통해서 평소보다 4배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통치해야하는 백성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혼란한 상황에서 새로 차지하게 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능력을 갖춘 관료가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화랑이 진흥왕 재위 후반에 생긴 것도 이와 관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화랑도의 조직
화랑도는 한 시대에 하나의 집단만이 존재한 것은 아닙니다. 화랑도 운동이 크게 일어났던 진평왕 시대에는 7개 이상의 화랑집단이 동시에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여러 개의 화랑도를 집단으로 통솔할 중심기관 또는 중심인물이 필요했으므로 화주라는 직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화주는 화랑들을 보호하고 통솔하는 수장의 역할을 했습니다. 화랑도는 각 화랑 한 명과 승려 여러 명과 화랑을 따르는 다수의 낭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화랑은 집단의 중심인물로서 용모가 단정하면서도 믿음직해야 하고, 사교성도 있어야 하고 체력도 있으며 지적능력도 좋았으며 신분도 진골이나 성골 중에서 낭도(평민들과 하급귀족)들의 지지를 받아서 뽑혔습니다. 신라에 사신으로 온 당나라 고음이라는 자의 견문기인 '신라국기'에 있는 내용을 보면 "귀인 자제 가운데 어여쁜 자를 뽑아 분을 바르고 곱게 단장해 이름을 화랑이라 했으니 나라사람들이 모두 높이 섬긴다."라고 한 내용도 있습니다.
낭도들은 정확한 신분을 알 수는 없으나 평민이나 하급 귀족들 출신인 청소년 및 청년들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짐작 할 수 있습니다. 화랑도는 이처럼 진골귀족에서부터 일반평민에 이르는 여러 신분들이 속하면서 수도에 거주하는 청소년 및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화랑도는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생활했습니다. 당시 신라사회는 3년을 하나의 서약/수련/의무 기간으로 정하고 있는데, 우리가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화랑 김유신의 수련기간이 3년이라고 합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따르면 화랑은 대게 15세-18세 청소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라의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리를 읽히며 수련을 했다고 합니다.
화랑도는 혈연관계가 아닌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결합되어 공동목표를 위해서 일정한 기간 동안 수련하는 단체인 만큼 서로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고 친밀했다고 합니다. 단순한 우정을 넘어선 관계였습니다. 사다함의 경우에는 동료 화랑이던 무관랑과 친밀한 관계였으며, 무관랑이 병으로 죽자 매우 슬퍼하며 통곡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다함도 슬픔을 못 이겨서 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을 이루어 볼 때 단순하게 깊은 우정이 아닌 서로 사랑하던 연인, 즉 동성애가 아니었을까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사료와 증거가 없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사다함과 무관랑의 관계뿐만 아니라 화랑도는 서로의 우정관계나 단체의식이 매우 강해서 화랑도의 일원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할 경우에는 그 가해자에게 복수를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랑도의 교육은 주로 승려가 담당했다고 합니다. 화랑도의 교사역할을 했습니다. 승려는 기본적으로 한문으로 되어 있는 불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승려들은 중국이나 서역, 인도까지 유학을 다녀오는 계층이었으며 승려들은 유교뿐만 아니라 도교까지 같이 접했으며 삼교(유교 · 도교 · 불교)에 능통한 당시 최고의 지식인 계층이었으므로 나라의 인재인 화랑들을 가르치기에는 적합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4. 화랑의 활동( 수양 / 교육/ 호국 )
√ 수양 - 화랑은 낭도들과 함께 신라의 땅 이곳저곳 다녔습니다. 특히 금강산, 지리산과 같은 명산과 계곡을 유랑하며 국토애 대한 사랑을 기르고 심신을 단련하였습니다. 실제로 신라의 영토 였던 곳의 깊은 산속의 바위에는 화랑들이 "누구랑 누구 왔다감"이라는 식으로 새겨놓은 것들이 현재에도 꽤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시절 10대나 현재 시대의 10대나 정신세계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 교육 - 미디어의 영향으로 화랑들은 군인과 같은 무력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은 학문적인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화랑들은 사서삼경 같은 유교 경전도 공부 했으며, 향가(시)를 짓는 등 문학적인 활동도 활발하게 했습니다. 특히나 향가라는 것 자체가 시를 짓고 이해하려면 한자의 음과 훈, 한국어의 언어학적 지식이 풍부하고 이해를 하고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호국 - 화랑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는 학도병들처럼 실전 전쟁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기초적인 교육을 수련하는 유년 사관생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화랑의 본래 의도는 고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층의 집단교육 풍습이 국가기관화된 것입니다. 삼국 말기의 전쟁에서는 보조적인 역할로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신라 국방이 많이 위태로운 상황이 많아지면서 화랑이 나서는 일이 많아졌으며, 어린 화랑이 공을 세우는 특별한 상황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화랑들은 아직 청소년이기 때문에 전쟁에서 보조적인 병력으로만 활동했습니다. 그것도 본인들이 싸우겠다고 윗사람들에게 간청을 해서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5. 화랑들은 동성애자? NO! 신라의 청소년 수련 시스템
현대에는 화랑이 10대 소년들 중심의 동성애적인 성향을 지닌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화랑들의 동성애를 뒷받침할 만한 역사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러 가지 근거를 들며 화랑들의 동성애에 대해서 말하지만 대부분은 정황상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입니다. 이익의 <성호사설>이라는 책에서 화랑의 수장을 미남으로 뽑았다는 기록 하나만으로 남색, 즉 동성애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호사설에서는 신라의 화랑들을 비판하는 게 아닌 조선시대에 방탕하게 놀며 본인들의 화랑의 후예라고 말하던 모습을 비판한 것입니다.
화랑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수 있게 일조한 신라의 청소년 수련 시스템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라의 많은 통일 공신과 장수들이 화랑 출신이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화랑 제도는 효과적인 인재 양성을 하게 해주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골품제'라는 신분제에 기반한 사회인 신라였지만 화랑과 낭도는 서로 다른 신분의 청소년들이 같이 모여 공부하고 수련하러 돌아다니면서 깊은 유대감과 결속력을 쌓게 해 주었고 신분 계층 간의 갈등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국가적 재난 앞에서 서로 단결하며 나를 지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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