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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으면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일본 황실 이야기 - 막장 드라마보다 더 한 시집살이를 시킨 <고준 황후>

by yesssi1990 2023.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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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이아몬드 수저로 태어난 고준 황후 

일본 쇼와 덴노의 황후이다. 그리고 아키히토 상황의 어머니이자 현재 일본의 일왕인 나루히토의 친할머니입니다. 방계 황족 출신으로 결혼 전의 구니노미야 나가코 여왕이다. 이방자 여사의 사촌동생이기도 합니다.  97세에 사망을 하였으며 일본 황실 역사상 최장수 황후입니다. 

일본 황실의 황후로서는 사실상 마지막 황족 출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자 아키히토의 아내인 미치코 황후부터는 순수한 황족이 아닌 평민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고준황후의 아버지는 방계 황족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왕입니다. 구니요시 왕은 구니노미야 아사히코 친왕과 이즈미 마키코의 3남입니다. 어머니 치카코 왕비는 시마즈 타다요시와 측실 야마자키 스마코의 8녀로 태어났습니다. 타다요시는 사쓰마 번의 제12대 영주이며, 폐번치현과 화족 제도의 실수 후 공작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준황후는 일본에서도 다이아몬드 오브 다이아몬드 핏줄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고준 황후는 1903년 3월 6일 구니요시 왕과 치카코 왕비의 3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1907 넌 가쿠슈인 여학부 유치원에 입학했습니다. 가쿠슈인은 황족과 화족(귀족)을 위한 학교였습니다. 일반인들은 돈이 많아도 들어올 수 없는 학교입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도 유명한 덕혜옹주가 다닌 학교이기도 합니다. 

 

고준 황후는 어린 시절 상냥하고 확실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사촌언니인 이방자 여사는 1984년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회고록에서 어린 시절의 고준 황후를 가리켜 "여성으로서 우아하고, 마음씨가 곱고, 총명하며, 노래를 잘 불렀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성격이 굉장히 좋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성격이 좋고, 마음씨가 곱던 고준 황후는 훗날 본인의 아들인 아키히토와 결혼한 미치코를 악독하게 시집살이를 시켜서 실어증 및 극심한 우울증에 걸리게 하는 악독한 시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악독한 시어머니가 되다.

고준황후의 장남인 아키히토 황태자는 1957년 가루이자와에서 열린 테니스 시합에서 1살 연하의 평민 쇼다 미치코를 만나게 됩니다. 미치코한테 한눈에 반한 아키히토는 고백을 하게 되고, 약 2년의 연애 끝에, 두 사람은 1959년 4월 10일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 과정에는 엄청난 반대와 진통이 따랐습니다. 물론 엄청난 반대는 바로 시어머니인 고준황후의 반대였습니다. 

고준황후

사실 미치코는 말이 '평민'이지, 미치코의 친가 쇼다 가문은 닛신제분이라는 대기업을 운영하는 일본 굴지의 재벌가이며, 미치코의 아버지 쇼다 히데사부로는 독일에 유학을 다녀왔으며, 쇼다 가문은 1930-50년대에 벽난로와 피아노가 갖추어진 서양식 대저택에서 살며 서구식 생활을 했고, 홈비디오를 찍었으며, 골프와 스키 등을 즐기며 미국과 유럽 등지로 해외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재벌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짤인 미치코를 시집보낼 때는 6t 트럭 3대를 혼수로 꽉꽉 채워 보냈습니다. 더군다나 미치코의 외가인 소에지마 가문은 옛 화족(백작) 가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안뿐만이 아니라, 미치코 본인의 재능도 뛰어났습니다. 거기에 빼어난 미모에 당시 일본 여성치고는 키도 매우 컸습니다.(161cm) 일본에서 명문으로 손꼽히는 세이신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는 재원이었습니다.  공부 외에도 음악, 미술, 스포츠 등등 못 하는 게 없었으며, 대학 시절에는 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과 친화력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식 때는 졸업생 대표로 연설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무엇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훌륭한 인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미치코는, 황족들과 화족들에게는 마땅치 않은 신붓감이었습니다. 이유는 본래 황실의 신붓감은 황족이나 화족 중에서 뽑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으며, 특히나 그중에서도 장래의 국모가 될 황태자비는 황족 내지는 고셋케 출신만 뽑았던 것입니다.  오랜 전통을 깨버린 미치코가 황족과 화족들에게는 못마땅한 신붓감이었던 것입니다.

고셋케 - 후지와라 출신 가문 (고노에, 쿠죠, 니죠, 타카츠카사, 이치죠)이다. 일본에서 다이칸 개신 이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대표적인 귀족 가문.

미치코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황태자비 후보로 거론되던 여성이 있었습니다. 기타 시라카와 하츠코라는 여성인데 그녀는 1939년 출생한 직후부터 장래의 황태자비로 유력하게 거론되었습니다. 기타 시라카와 가문은 옛 방계 황족으로, 하츠코의 할머니 기타 시라카와 후사코는 메이지 덴노와 측실 소노 사치코의 7년이며, 어머니 기타 시라카와 사치코는 화족이자 고 산케에 속한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 출신입니다. 히츠코는 전통적인 황실 신붓감에 부합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고산케 -도쿠가와 쇼군 가문의 일족으로서, 쇼군직을 승계할 수 있는 오와리 번 · 기이 번 · 미토 번을 말한다. 화족 중에서도 명문가문

평민 출신의 황태자비 후보 미치코에 대한 옛 황족들과 화족들의 반발은 대단했습니다.  자신들의 신적강하로 인해 수백 년간 이어내려 져 오던 높디높은 신분을 잃고 하루아침에 평민으로 전락한 것도 매우 억울한 상황인데, 반대로 자신들의 아래로 여기던 평민이 황족, 그것도 장래의 천황이 될 황태자와 결혼하여 황후가 된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반발은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신적강하 - 일본의 황족이 분가해 새로 가문을 만들어 덴노의 신하의 호적으로(臣籍) 내려가는 것(降下)을 말한다.

고준 황후의 남편이자 시아버지니 쇼와 덴노는 "이제 황실에도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며 평민 출신의 큰며느리인 미치코를 감쌌지만, 시어머니인 고준 황후는 미치코를 몹시 미워하며, 미치코의 아랫동서들과 함께 반대운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또한 고준 황후의 사촌들인 옛 황족들과 화족들이 똘똘 뭉쳐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본인들의 권위의식에만 심취해서 졸렬한 짓을 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아키히토 황태자가 미치코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황실로 시집을 오게 되었지만 그 이후로도 미치코한테 집요한 학대와 괴롭힘을 가했습니다.  특히나 시어머니인 고준 황후는 상상이상의 행동으로 괴롭힘을 일삼았습니다. 미치코가 황실로 시집온 후 우울증이 심해졌어며, 우울증으로 인하여 실어증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악랄한 시집살이의 끝을 보여준 고준 황후입니다. 

 

최장수 황후로서 생을 마감하다.

고준황후

2000년 6월 16일 고준 황후는 노환에 의한 호흡부진으로 사망했습니다. 향년 97세입니다. 일본의 신화시대를 제외하면 역대 황후들 중 최장 재위이며 최장수 기록입니다. 죽어서 얻는 시호는 고준 황후이며, 나라 시대에 편찬된 한시집 '가이후소'에 실린 시구에서 시호를 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장례식 당시에 미치코 황후와 마사코 황태자비 사이에 고부 갈등이 있었습니다. 미치코 황후는 상복이며 베일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당시 유산 후유증이 남아 있던 마사코 황태자비는 이에 대해 '시어머니가 황족들과 시종들의 앞에서 나를 질책했다'라고 생각했다. 당시 마사코 황태자비는 유산 후유증 때문에 시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 못했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고부갈등이 심한 탓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 '고준 황후'에게 악독한 시집살이를 당했던 미치코는 본인의 며느리인 마사코 황태자비에게 악독한 시집살이를 시킨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본인이 시집살이를 당했기 때문에 안 할 줄 알았지만, 보상심리로 인해서 그런지 몰라도 미치코 본인도 고준 황후 못지않게 며느리인 마사코 황태자비를 악독하게 시집살이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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